감동♡글씨방

아내의 빈자리

탤런트 2007. 1. 5. 14:18

 

 

 

사람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야기들...[특별편집]

    ♡ 천사같은 아이, 신원경 ♡


    5살의 유리공주 "엄마 아파서 미안해!" 이제 겨우 5살을 넘긴 유리공주 원경이. 맑은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선한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이 천사같은 아이. 그러나, 현재 원경이는 "천성 면역 결핍증"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다. "선천성 면역 결핍증"항체가 만들어지지 않아, 흔히 걸렸다 낫는 가벼운 감기나 작은 상처에도 큰 아픔과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희귀난치병이다 . 현재 이 병을 낫게 하는 치료방법이나 치료제는 없다. 제일 오래 산 아이가 열 살까지라고 한다. 국내에서 5명 미만 정도의 아이가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지난 2002년 12월 18일엔 같은 병으로 여덟 살이란 어린 나이에, 유성우 군이 하늘나라로 간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엄마, 아파서 미안해...." ▒▒▒▒▒▒▒▒▒▒▒▒▒▒▒▒▒▒▒▒▒▒▒▒▒▒▒▒▒▒▒▒▒▒▒▒
    ♡ 어느 사형수의 아내 ♡


    세상이 싫습니다... 신이란 것이 존재 한다면...원망하고 또 원망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 우리가 무슨 그리 크디큰 죄를 지어서...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기에 감히 글을 띄웁니다. 내나이 열여덟 살에 양갈래 긴머리의 학생이었죠... 친구의 애인을 빼앗았습니다... 나쁜짓이죠... 하지만 서로 처음봤을 때 느낀 것이 우연 아닌 필연이었다고... 어둠의 세계에 있던 그는 남들이 말하는 건달이란 사람이었어요... 매일같이 만나 놀러다니고 쇼핑하고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저는 후회않지만...오빠 만나기 전까지 순진한 여고생이었어요... 나의 생활은 바뀌어 가고 있었죠... 처음으로 너무나 사랑한단 이유로 몸을 허락했어요... 술을 많이 마셔 비틀거리는 날 부축해 간 곳은 화려한 네온싸인에 둘러쌓인 커다란 모텔... 그곳을 오빠와 껴안고 들어가는 모습을 정말 재수 없게도 학교 선생님께 목격을 당했죠... 바로 퇴학이란 상상할 수 없었던 처벌이 내려지고... 집에서 받는 손가락질에 감당치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그때부터 어린 나이에 오빠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행복했어요... 가끔 집이 그립기도 했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해줬어요 나의 오빠가... 큰집에 좋은가구들... 잦은 쇼핑. 철이없었죠... 심통도 많이 부렸죠... 늦게 들어 올때도 많구... 새벽에 자다가도 전화받구 나가고...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로 용서 했었죠... 스무살이었어요... 몸이 이상해 병원을 찾았죠... 병원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 산부인과로 가보세요! ' 어려보여서 인가봐요... 임신이 더라구요... 임신7주... 좋았어요... 당연히 울 오빠도 좋아할줄 알고 선뜻 얘길는데... 오빠가... 날 보고 항상웃고 있는 오빠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나에게 내아기를 아니 우리의 사랑하는 애기를 지우래요... 절망스러웠죠... 오빠의 얼굴이 너무나 미워보여 방으로 뛰쳐 들어오니 오빠가 따라 들어와 나를 살며시 껴안으며 '애기가 애기를 가졌다니... 요만한 체구로... 신기하네... 울지마... 아직은 오빠가 안될것같아... 애기하고 나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아직은... 이해해줘... 애기야...삼년만... 기다릴 수 있잖아... 미안해... 울지마... ' 하며 가늘게 떨리는 오빠... 오빠 역시 슬펐던 거예요... 같이 울었죠... 아주 많이... 그러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행복했죠 나를 보는 그의 한결함에... 내가 느끼는 그의 대한 사랑에... 하지만 불안함이 자꾸 밀려오기 시작한것이... 잦은 병원 출입이었어요... 그것도 항상 배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무서운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뇌리 를 스치더라구요... 그래도 항상 웃는 오빠... 그래도 그와의 행복 함음 꺼질줄몰랐죠... 같이 생활한지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때... 난 두번째아기를 가졌었죠... 무서웠어요... 또 지우라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근데요... 정말 좋아하면서 애들같이 좋아 하면서 내손을 잡으며 내배를 안으며... '애기야... 오래 기다리게서 미안하고 또 고마워...오빠 이제 준비됐다... 애기는 뱃속에서 잘 키우고...배많이 나오면 꽃보다 이쁜우리 애기 드레스 못입으니까 빨리 결혼하자... 그리고... 오빠 이제 이런 일 안할거야... 우리 여보야 걱정되니깐... ' 말 못하고 울었어요...행복 해서 세상을 전부다 가진듯 태양을 가슴에 안은듯 넘 좋아서 7년이란 세월동안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며 사랑해준 오빠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오빠는 고아예요... 형이 있다는데 찾질못하고... 먼저 우리집에가서 오빠가 그리고 내가용서를 빌고 작은 사업을 한다는 말에 형편이 넉넉치 못한 부모님들이 인상이 좋아보인다며 그런 일하는 사람치고 썩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눈이 선하고 예쁘거든요... 웃는얼굴이 예쁘고... 야단은 많이 받았지만 승낙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혼인신고를하고... 제일 행복한 결혼식날 우리집땜에 오빤 장난스레 더 많은 축의금을 꼬맹이 땜에 포기한다며 조그맣게 치뤘죠... 재빠른 진행에 피곤도 한지라 신혼 여행은 나중으로 미뤘었어요...아쉬웠지만... 25살 되던 해에 10월8일날 우리둘의 분신인 아가가 세상의 빛을 보았어요... 오빠닮은 사내아기... 좋아서 너무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 할 정도로 행복했죠... 오빠가 얼마나 좋아할까... 자기닮아서 투덜대진 않을까... 지방으로 급한일루 가서 미안하다며 하긴했는데 너무 늦는건 아닌지... 그래도 좋았죠...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퇴원을 막 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기랑 누워있을때 오빠가 집에 돌아왔어요... 어김없이 ' 애기야...! ' 하며 근데 오빠가 아기를 가슴에 안더니 표정이 그리고 손이 떨리는거예요... '왜그래...? 히히 오빠랑 똑같아 '오빠는 씨익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웃더니 나에게 ' 힘들었지...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애기가 얼마나 아팠을까...?미안해... 용서해 줄거지...? ' 그러면서 날 안는 오빠 숨소리가 이상했어요... 틀렸어요 아주 많이... 근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죠... 숨기는것이 없는 남자이니까... 삼일인가 지났나봐요... 새벽 2시가 넘어서 술에 만취되여 들어오는거예요... 들어오자마자 날 반쯤감긴 슬픈눈을하고 뒤를돌려 안는거예요 독한술냄새에 속삭이기 시작하는데 난 심장이 그대로 멎어 버리는줄 만 알았죠... ' 지금부터 내가 하는얘기 잘들어~~ 오빠 우리 큰 애기한테... 죽을죄를 졌다... 사실... 오빠는 빨간줄이 좀 많아... 첫번째 애기 지우라고 했을때 사고를 쳤었거든... 근데 운이 참 좋았지... 사람을 써서 집행유예로 해결이 되었어... 그리고 일 그만둔다는 조건 으로 사람을...죽...였...다... 큰액수의 돈도 받고... 근데 어쩌나 나 애기랑 단 하루도 헤어져 있기 싫은데 저쪽에서 날 부르네... 죽이기만 하면된다해서 맘잡고 같이 살아보려고... 그래서 했는데... 인간쓰레기같은 형님이라는 그 개자식이 날 배신했다... ' 혼미해져 가는 정신에 마지막 처음들어보는 오빠의 무서운 말은 잘 듣지 못한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렸죠... 내손을 잡고 숨죽여 울고있는 오빠... 미칠것 같았어요... '오빠!! ' 얼른 눈물을 훔치고 웃더라구요...'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 '조금만 기다려... 7년을 기다려 주었잖아 착한 울 애기가... 5년만 기다 리면 되...그럴수 있잖아...! 그치? ' 난 한없이 울며 고개만 끄덕였죠... 나 이제 어떻해야 하죠... 이번달 16일 마지막 재판에 오빠 내 사랑하는 오빠가... 사형선고 를 받았어요... 난 거의 실성한 사람이었어요... 마지막 면회가 될지모르겠어요... 어제 다녀왔는데...무척이나 수척한모습 영진이를보고 나를보고 웃는거예요... 바보같이... 매일 웃기만해요... 팔년이란 세월동안... ' 왜이렇게 말랐니...? 많이 먹어야지 영진이도 잘 자라지... 애기야 미안하다... 사랑하는거 알지...? ' 그게 마지막 말이 었구요... 뒤돌아 힘없이 눈물흘리지도 않고 뒤도 한번 보지않고 걸어 들어 가더라구요...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와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았죠... 오빠의 슬픈얼굴이 겹쳐지는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아요... 이제는 또 다시 면회를 가지 말아야 하나... 슬픈얼굴을 볼 용기가 없거든요.... 서랍을 열었어요... 수감전 드라이브하며 동해 서해 여기저기를 사흘간 드라이브만 하고 사진을 몇장찍 었었거든요... 사진을 꺼내어보려고 하는데 오빠의 짧은 편지가 있더라구요...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 정아야...! 세상에 태어나 너를 만나 가장 행복했고 너를 만질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었다 슬플때는 네가 아플때 몸이 많이 약해 많이 아플때 함께 아프지 못한게 슬펐다. 못난 오빠를 여태 사랑 해줘서 고마웠다 다음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면 난 애기의 동생이 되고 싶구나 헤어지지 않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가슴아팠을 때가 언제인줄 아니... 바로 지금 이순간 널 볼수없는 곳에 가야 한다는것... 너를 만질수 없다는것... 사랑했고... 위에서도 사랑해줄게... 아프지말아라... 신이있다면 빌고 싶습니다 어두운생활에 접해 좋지않은 삶을 했지만 죽기에는 너무나 착한 우리 오빠... 살려줄수 없다면 영혼이되어... 내가 느낄수 있게... 사랑하는 우리 오빠야... 항상 잘웃는 오빠...! 눈감을 때에도 날보듯 그렇게 웃어야되...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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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의 빈자리 ♡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이랍니다.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 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 질러진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봐 이불 속에 넣어 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유치원에서 부모님들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또 일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 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갔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 나라에 있다고.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 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타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 . .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생각하면서 우는 것 봤어. 근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 안나. 아니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편지를 보고 또 한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흘렸는데도... 우리아이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엄마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이지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 아침부터 콧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야기... 온전한 가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고맙다고 생각이 듭니다. ▒▒▒▒▒▒▒▒▒▒▒▒▒▒▒▒▒▒▒▒▒▒▒▒▒▒▒▒▒▒▒▒▒▒▒▒
    ♡ 어머님의 슬픈 사랑 이야기 ♡


    박옥랑 할머니(左)가 누워 있는 딸의 손을 주물러 주고 있다. 68세 장애 딸 50년 돌본 '101살 엄마' 박옥랑 할머니의 母情 네살때 떨어져 머리 등 다쳐 전신마비된 딸의 손발 노릇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소." 101세의 박옥랑(朴玉郞.광주시 북구 우산동 주공아파트) 할머니-. 자손들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몸이 불편한 68세 된 딸을 돌보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딸 조의순(趙義淳)씨가 전신마비 상태로 누워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녀는 현재 광주시내 13평짜리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서로를 거울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朴씨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朴씨가 출근한 사이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쳤다. 朴씨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 업고 '용하다'는 병원.한의원.침술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그 뒤부터 딸은 방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살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버렸다. 朴씨는 딸을 언니 집에 맡기고 학교에 계속 나갔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3년 전남 나주시 영산포여중에서 30년의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딸의 상태가 악화된데다, 생업이라는 핑계로 '아픈 딸'을 혼자 방에 방치했다는 생각이 퍼뜩 든거죠." 그만 둔 뒤 朴씨는 딸에게 글 공부를 시켰다. 종이에 글을 써 보이며 한글은 물론이고 한자까지 가르쳤다. 학교 교과서와 문학서 등도 읽어줬다. 딸은 금방 글을 깨우쳐 갔다. 때로는 시도 읊조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할 뿐 머리는 영리했다고 朴씨는 기억한다.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朴씨는 "딸은 나한테 몸을 기대고, 나는 점차 흩어지고 있는 정신을 딸에게 맡기고 사는 셈이죠"라며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 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朴씨는 정부에서 매달 나오는 얼마되지않는 돈도 아끼고 아껴 한 달에 몇 만원씩이라도 꼭 저축을 한다. 자신이 죽은 뒤 딸 혼자 살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趙씨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라며 "오늘까지 산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朴씨가 사는 아파트에 간병 봉사를 하러 다니는 유상엽(44.여)씨는 "할머니는 딸을 돌봐야 한다는 정신력 때문에 건강하게 사시는 것 같다"며 "이들 모녀를 볼 때마다, 모정(母情)은 위대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 이 토록 끈질긴 모정의 실 타래가 얼키고 설키는 기나긴 100년의 삶의 언덕을 기대는 어머니.... 곱디 고운 중등 여 선생님... 청춘을 불살라 반 세기를 딸 위한 �불 전신마비의 딸을 위해 극진한 간호하다 늙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묻어둔 한 맺힌 눈물은 강물이 되어 흘러 갔나요? 어머니의 청춘은 그 누가 보상 하리오? 네살베기 딸아이 장애가 되어 이제 68세 되었고 어머니의 연세 101세.... 아픔의 강물, 한 맺힌 세월의 바다 눈물로 얼룩진 모녀사랑 ... 자식위해 늙지 못하고, 자식 때문에 차마 저 하늘로 떠나고 싶어도 눈 감지 못함이여.. 당신의 삶이여.. 아픔이여...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잊지 못할 어머니..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으로 늙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행하지 못 하시는 어머니입니다. 부모없는 자식없고 엄마 사랑보다 귀한것은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은답니다. 어머니의 은혜.... 길고 긴 모정의 세월 .. 지금의 ,,, 우리의 엄마 아빠는, 이렇게 지고 지순한 어머니의 뒤를 밟을 수 있을까요? 우리님들.. 아직 생전에 계신 부모님께 마음 속 깊이 따뜻함을 전하며 살아 왔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우리들의 은인 이십니다. 긴 사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름다운 고백(실화) ♡


    이 고백은 충남 모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재학중인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때 부터 그랬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열성인자만 물려 받았는지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뒤처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 난 동생에게 뒤처졌다. 그래서 항상 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난 다른사람에게 소개를 할때도 내 이름으로 소개 받기 보다는 '누구의 형' 이라는 식으로의 소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중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난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나에겐 그것마저 큰 컴플렉스였다.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다니지만... 내 옆에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하긴 볼품없는 나에게 다가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역시 용기가 없어 애만 태우다가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모임에서의 단체활동으로 봉사활동을 나가게 되었다. 그곳은 조그마한 교외에 있는 요양원. 주로 이제는 더 이상 차도가 없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 식물인간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2층의 206호실. 내가 맡은 담당환자가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할아버지 할머니 겠지. 난 206호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실내. 환한 병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있었다. 이곳은... 조용했다. 그 흔한 TV도 없었고 라디오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아니었다. 조그마한 소녀... 긴 머리를 땋아 한쪽으로 늘어뜨린 소녀가 누워있었다. 내... 내가 잘못 들어온것인가... 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다시 확인했다. 206호. 206호. 206호.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맞는 병실이었다. 순간 밖에서 들어오는 한 사람. "어서오세요.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 아이를 보살펴줄 사람이군요." "아... 전..." "잘 부탁해요. 저 아이의 애미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엉겹결에 나도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침대 앞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저 아이는 식물인간이었다. 10여년전. 저 아이가 10살때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몸의 상처는 다치료되었지만 그때 이후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10년전 10살이라면.... 20살... 하지만 아직도 중학생 정도로만 보일뿐이었다. 아마 활동을 하지않는 탓으로 성장이 느린것이리라 생각했다. 어머니는매우 지쳐보였다. 10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했다. 그러며 잠시 눈주위를 훔쳤다.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다음날. 난 병실로 찾아갔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빛이 너무밝다. 난 창가로 다가가서 블라인드를 조금 내렸다. 그리고 다시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것은 관을 통해서 들어가고 관을 통해서 나왔다. 내가 할일은 없었다. 이제서야... 내가 왜 이 병실로 배정받았는지...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 나같은 사람은 그냥 조용히 앉아 있으라... 이거였군...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계속 잠을 잘 뿐이었다. 어머니가 말하길... 가끔 눈을 뜰뿐이며 대다수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했다. 결국 내가 할일은 이 병실의 물건이 도둑맞지 않게 지키는 것. 그 역할밖에는 없었다. 다음날. 난 책한권을 들고 갔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난 책을 한권들고 병실로 갔다.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가 문득 그녀를 보았을때 그녀는 눈을뜨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눈을 뜬것을 본 것은!... 비로서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녀는 불안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안심했다는 듯이 잠에빠져들었다. 그날 난 들고간 책 한권을 모두 읽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난 다른책 한권을 가지고 병실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가 일찍 나와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 또래가 흥미 있어할만한 연예인 이야기 였다.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도 간단하게 인사를 받으시구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야기를 알아들어요?" 난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알아들을 것이라고 믿어요." "..." 그녀의 어머니는 바쁜일로 곧 나갔고 또 병실에는 그녀와 나 밖에 남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책을 폈을때 문득 이불 밖으로 나와있는 그녀의 하얀손이 보였다. 난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아 이불 안으로 넣어주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깨어있었다. 순간 놀라 ! 어쩔줄 모르다가 그냥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책을 다시 펴들었을때... 난 내 심장이 무척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짓을 한것도 아닌데도 내 심장은 계속 두근 거렸다. 결국에는 휴게실로 나가 커피한잔을 마시고 겨우 진정이 됐다. 다음날. 병실에 들어가자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바보같은 짓인줄 알았지만... 얼마전부터 그녀가 '살아있다'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순간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가 날 보더니 웃었다. 웃었다? 식물인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 무슨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었다. "왜... 왜그런거죠?" "당신도 느꼈군요. 저 아이가 웃는 것을..." "느끼다니요? 그럼 정말로 웃은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순간이지만 다시 어머니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저도 몇번이나 보아서 의사선생님에게 말했지만...제 착각이랍니다. 저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수 있는 부분이 두 눈밖에 없어요. 하지만 잘 되었네요. 당신도 저 아이가 웃은것을 느낄수 있다니... 저 아이와 잘 통했는것 같군요" 하며 웃어보였다. 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난 그녀가 웃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다음날. 이제는 병실을 찾는 것이 내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 책을 읽는 대신에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동화부터 시작해서 전쟁소설까지 난 닥치는 대로 읽어주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자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오늘은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깜빡 가져올 책을 놓고 와버렸다. 병실에 들어가자 이미 그녀는 깨어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30분 전부터 깨어있었다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웃어보였다. 난 그녀에게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대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읽었던! 책이야기, 친구이야기, 시골이야기...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고 밤늦게까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이미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녀도 잠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새벽 3시. 난 그녀가 무척 편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이야기. 열등감을 느끼는 나. 여자친구가 없는 나 이런 내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용기가 없어 그냥 보내버린 사람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누가 알게될까봐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 스스로 하고있었다. 왜일까... 그녀는 식물인간이니까...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하는 것인가? 난 밤새도록 그녀에게 넋두리를 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때. 내 뺨에 따뜻한 것이 놓여있었다. 그녀의 손이었다. 그녀는 계속 깨어있었다. "다.. 당신이 올려놓은 거에요?" 난 놀라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답할리 없었다. 그저 계속 누워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뿐이었다. "제.. 제가 밤중에 실례를 한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난 병실을 뛰쳐나왔다. 꼴좋구나 이녀석아... 어제는 밤새도록 넋두리를 해 대 더니.. 그리고 난 집으로 뛰쳐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난 늦게서야 병실을 찾았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병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그녀.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제는... 일찍 들어가셨더군요..." "네... 사정이 있어서..." 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날이네요..." "네에. 저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듯 했는데.아쉽네요." 나는 다시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애써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당신이 오고 난 후로부터 저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지금까지는 저런일이 없었는데...의사선생님은 좋은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네에..." 난 언제나 처럼 침대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저 오늘 마지막날이에요. 지금까지 고마웠구요... 어제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지만 난 또한번 그녀의 웃음을 느낄수 있었다. 용서해준다는 뜻인가... 그리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다음날. 난 하루종일 안절부절해 있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모두 괜찮냐는 질문뿐이었다. 뭔가를 하지 않는것 같은데... 뭔가를 빼먹는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덜렁거리는 녀석. 또 뭔가를 빼먹고 헤메는군... 바보... 바보... 바보... 그러기를 일주일. 난 원인을 찾아내었다. 그 요양원 그곳에 뭔가를 놓고 온것이 틀림없었다. 책을 놓고온건가... 아니면 내 물건이라도... 다음날. 아침일찍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척 놀라는듯 했지만 난 인사를 하고 그녀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에서는 땀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잊은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배고프지 않았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이 내겐 둘도없이 행복한 시간이었기에... 나는 그 후로 계속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도 언제나 날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고마웠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남으면 무슨책이든지 닥치는 대로 읽어 이야기할 주제를 찾았다. 그러던중 어느날... 난 그날 밤도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이야기 하고 있을까... 문득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 해줄때면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겨우 입을 열었다. "후후... 그래요... 난... 그러니까..." 난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더듬거렸다. 오늘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꼭 해야만 했다. 입의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 말라버렸다. 하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당신을 좋아해요."... 해버렸다. 20년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좋아한다는 말.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던 건가... 하지만 난 그녀에게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이야기 뿐이었지만...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순간. 그녀의 손이 히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 움직였어? 난 급히 간호원을 불렀다. 그녀에게 말을 했지만 기대하지 말라며 의사를 부르려 나갔다. 곧 의사가 들어왔고 진찰을 조금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노'였다. "확실히...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게 일주일후... 그녀의 병실을 찾아갔을때 그녀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간호원 난 간호원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어보았다. 그녀는 매우 놀라 더듬거리며 대답해주었다. "어제저녁... 손가락을 움직였어요.닥터도 확실하게 보았구요. 그래서 큰 병원으로 옮겨갔습니다." 난 병원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내고 단숨에 달려갔다. 요양원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 그 사이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어머니는 날 보자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그 아이가 차도가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덕입니다. 근육이 되살아 나고 있데요.이제 움직일수 있어요. 고마워요...고마워요..." 겨우 겨우 그녀의 어머니를 진정시킨후 그녀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언제나 같은 그녀.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 했다.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움직일수 있데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울고 있었다. 정말...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구나... 난 그날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병원은 요양원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난 시간이 남는대로 찾아가 그녀를 만났다. 그러기를 6개월 그녀는 정말 큰 차도를 보여주었다. 신문과 방송사에서는 10년만의 기적이라며 몇번이고 찾아왔었다. 정말이지 이것은 기적이었다. 그녀가 움직일수 있다니... 그러자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이제는 곧 그녀를 만날수 없게 되겠구나... 그녀도 다른 정상인과 같이 되면... 나를 만날일은 없게될꺼야... 나같은 사람은 거들떠 보지 않겠지... 6개월전 그녀를 좋아했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때 말을 할수 있었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뻔하겠지... 나같은 사람. 관심없는 것은 당연해... 그후로 난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전과 같은 허탈감. 이번에는 더 힘들었다. 몇달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가끔 신문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때면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지금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후후... 잊어버리자. 이젠 끝난일이야...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문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가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건네오며 다가왔다. 어찌해야 할까. 지금까지 찾아가지 않은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오랫동안 아무말 없이 찾아오시지 않아서 제가 직접찾아왔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간 사정이 있으셨겠죠...저와 아이가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씩이라도 들려주세요. 어찌되었건 아이의 은인이니까요..." 우연일지도 모르는 이 일을... 그녀의 어머지는 내덕으로 알고 감사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녀의 말. 그녀는 지금 굉장한 차도를 보여 재활치료도 받고 있다고 한다. "저... 혹시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당신이 처음올때부터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그날밤 내가 했던 모든말. 내가 했던 고백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말... 예상하던 바였다. "그럼. 꼭 한번 들려주세요." 그녀의 어머니는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난 텅빈 골목에서 혼자 서서 어머니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볼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난 커다란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갔다. 얼마만인가... 그녀를 보는건. 병실에 찾아가자 그녀의 어머니가 홀로 앉아 있었다. 침대는 비어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와 같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인사를 건넨후 그녀를 찾자 재활치료중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간 재활치료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많은 환자들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손으로 가르켜 보았다. 여전히 긴 머리를 땋고 금속으로된 지지대에 몸을 싣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보였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옷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기는 것을 쉬지 않았다. 마치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그녀는 위태위태했다. 어느덧 그런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서 있었다. 난 그대로 돌아가려 했다. 이제 건강한 모습을 봤느니... 내가 걱정할 일은 없었다.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툰발음이었다. 외국사람이 부르듯 서툴게 부르고 있는 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였다. 그녀가 날 보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몇번이나 반복해서 부르고는 내게로 걸어왔다. 서툰걸음. 그런 걸음으로 몇번이나 넘어질뻔 하면서 걸어왔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난 움직일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정든 아버지를 만난듯... 그녀는 결국 내 이름을 부르다가 부르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하며 그녀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환자들과 간호원은 그녀를 위해 길을 내주었고 모두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점차 내게로 옮겨왔다. 여전히 울먹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이제... 이제 얼마남지 않았어요. 힘을내요.... 난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힘들게 다가온 그녀는 쓰러지듯 내게 안겼다. 곧이어 주변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 난 그녀를 안고 천천히 앉았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계속 말을 했다. "에... 에... 차자오지... 아.. 안았.. 써요..." 원망하듯 말하는 그녀. 난 대답할수 없었다. '당신이 날 싫어할까봐... 난 당신이 떠나버릴것이 두려워 찾아오지 못했어요.'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릴뿐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며 말했다. "...말... 지.. .지금까지... 다..단신을 차자가려고 열심히 했어요." 난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때 말... 기... 기이억 하고...있...있써요..." 그녀는 계속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을 이었다. 내 귀에는 그녀의 말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 나도.. 좋아... 좋아해요. 이... 이말하고 .. 시.싶었.. 어요.." 그리고 그녀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난 그런 그녀의 젖은 등을 토닥거리며 달랬다. 내가... 내가 왜 쓸데없이 걱정을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난 울먹이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리고... 정말 좋아해요." 사랑한다는 말... 할 자신이 없었다. 제길 난 이런 순간까지 용기가 없는 것인가... '사랑해요' '사랑해요'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난 '좋아한다'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녀는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 더 이상은 놓쳐버리고 싶지 않기에... 떨어지고 싶지 않기에... "그..그럴때는..사라...사랑이라느..는 말을써도 조..좋을..꺼에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난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 그녀의 빠른 회복과 두분의 사랑이 영원하길 빌며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
    ♡ 아내가 사랑했던 남자들 ♡


    유방암 말기로 투병중인 아내가 어느 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세 남자를 사랑했는데 나는 그들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어요. "첫 번째는 옆집 오빠요, 두 번째는 대학 선배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의 당신입니다." 부인은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한없이 서럽게 울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는 그 세 명의 남자는 모두 자신(自身)이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 사랑 고백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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