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나절이 지난 후, 병실에서 재라와 순한의 통곡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버지, 나를 이렇게 두고 가시면 난 어떡합니까?"
"오빠, 오빠, 오빠마저 떠나가면 이 순한이 누굴 의지
하고 산단 말이오."
아내와 아들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일한은 파란만장
하면서도 올곧았던 76년간의 삶을 마감하고 오전 11시
40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유족들이 일한의 유품을 정리해보니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 몇 가지와 구두 두 켤레, 양복 세 벌
밖에 없었다. 많은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장례식은
치러졌고, 4월 8일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유언장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유일선의 딸, 즉 손녀인 유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시까지 학자금으로 1만 불을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과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며달라고 하면서 이런 부탁을 덧붙였다. '유한동산
에는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중, 공업고교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여 그 어린 학생들의
티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달라.'
셋째, 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기금' 에 기증한다.
(일한은 이 신탁기금에 이미 9만 6천 282주를 기증한
바 있었다. 그리하여 23만 7천 223주를 소유하게 된
신탁기금은 나중에 유한재단으로 발전하여 유한양행
최대주주가 된다.)
넷째, 아내 호미리는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아내에게도 재산을 물려준다는 말이 없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는 말만 남겨놓았다.
여섯째, '아무에게 돈 얼마를 받을 것이 있으니 얼마는
감해주고 나머지는 꼭 받아서 재단 기금에 보태라' 는
식으로 세세한 금전 거래까지 밝히고 있다.
일한의 유언장이 공개되자 언론매체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 '나의 전재산 학교 재단에', '아들엔
한푼없이 자립하라' 식으로 제목을 달아 대서특필
하였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한 일한의 결단과 정신은
우리사회에서 두고두고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