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아시아 의 북부 지역. 북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는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아제르바이잔, 동쪽으로는 중국,몽골, 남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크르쿠메니스탄과 접경이며
수도 는 아스타나.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인, 이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어 딛는다.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 에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온땅으로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
온땅이 여호와 하나님께 열납되리라.
여호와 하나님 이땅, 이민족, 이영혼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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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티 공항은 규모가 아주 작다.
밖으로 나오니 정말 강열한 햇살이 모든것을 태워버릴것같다.
알마티는 해발 고도가 900m이며 사과의 아버지란 뜻이다.
현지 김병렬선교사님를 만나 버스에 오른다.
너무 더워서 나오는 말이 "에어컨 틀어주세요" 하니, 함께 나오신분이 "이곳에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그냥 견다세요"한다,
정말이지 창문 하나 열어 놓을곳이 없으니, 이젠 죽었구나 싶다.
엄청난 햇살에 세상의 모든것이 다 지친듯하다.
우리들은 시선을 창밖으로 향하고 생소한 도시 알마티를 눈동자을 굴리며 정탐하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란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 하면서...
두나미스교회에 도착해서 도착예배을 드리고 교회에서 마련한 우즈베키스탄 음식인 플릎 이라는 이름의 음식 으로 점심을 먹고,
사모님의 부탁으로 장애인 노숙자들의 이불빨래와 카페트빨래를 도와드리고,
교회 청년들중 한국말을 잘하는 에이라자매와 이야기 나누며,
유라 청년을 소개받고 한국말을 잘하는 자매와 러시아어 찬양연습을 하며 즐겁게 보내고,
이곳 전도사님은 카작 여인과 결혼하여 두딸을 낳고 살고 있으며 우리가 떠나기 하루전날 영주권이 나와서 모두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저녁은 현지식당에서 샤슬릭과 미전도 종족인 둔간족(회족)의 음식인 라그만이라는 토마토와 양배추, 오이등을 얹은 스파게티만큼이나 굵은 국수를 모두들 맛있게 먹었고,
우리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도 해가지지 않는 백야를 경험하며 목사님댁으로 걸어서 갔다
이곳은 일찍이 도시계획이 되어 있어서 도로가 넓고 가로수가 무성하다.
넓은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러시아계 인듯한 여인이 우리에게 무어라 소리치며 물을뿌린다 함께걷던 전도사님부인이 묵묵히 걸음을 빨리해서 걷기만한다
왜 물을 우리에게 뿌리며, 왜 그냥가냐고 물으니, 그냥가자고 햐며 자기네 끼리 축제가 있어서 그런것 같단다. 하지만 분위기가 축제가 있었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등골이 오싹해짐과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바로 뒤에오는 자매들을 보고 현지인 남자 아이 들이 "제네들 덮칠까 " 하는 소리를 전도사님 사모님이 알아듣고는 뒤로 가셔서 자매들의 발걸음마저 재촉하신다,
뭉쳐다니며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얼마전에도 살인사건이 도로상에서 일어났으며 이곳의 치안부재 상태인것을 알려주며 대열에서 떨어지지 말것을 당부하고, 전도사님은 앞에, 사모님은 뒤에서 오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내일의 여정 때문에 물건을 사기위해 슈퍼 앞에 서 있는데 군인 두명이 우리에게 무어라 한다, 전도사님께서 그들이 구걸을 하는 거라구하신다. 앞으로 많이 볼수있는광경이니 개의치말라고 한다. 월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상관이 돈을 요구해서 구걸을 한다고 한다.
나는 그충격에서 헤어 나오는데 한참 아주한참 걸렸다.
모두가 목사님댁 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고,
샤워실 하나에서 23명이 해결 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이것도 감사하다.
아침 부터 카라간다로 이동할 준비에 바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뜨거운것같다. 맞다, 덥다는 표현보다 뜨겁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하다.
두나미스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기차표를 받고 여권과 입국시에 받은 통행증을 확인하고 이동한다.
나는 기차를 기다리며,
영화에서 본 것같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같은 그런 기차를 타볼것 이라는 기대감에 약간의 흥분이 이는것이다.
칸막이가 있는 이층 침대칸이며 문을 열면 긴 복도가 기차 의 차창과 함께 있어 카작의 풍경을 보며 만끽 할 수 있으리라.
거기에 에어컨이 나온다는 선교사님의 말에 행복감마져 들었다.
그런데 잠시후, 나의 행복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에어컨은 나오지 않고 창문은 모두 열리지 않는다.
거기에 창문에는 강한 햇살을 막기위해 겹겹이 커튼이 쳐져있다, 차창밖의 풍경은 생각도 말아야한다.
기차에 탄 현지인들이 모두 옷들을 벗고 최상의 편한 자세로 다닌다, 민망할 정도로 ..
기차가 달리면 에어컨이 나온다고 하는 말에 기다리고,
한시간후면 에어컨이 나온다고 하는 말에 또기다리고,
두시간 세시간이 지나도 에어컨은 안나온다. 이쯤에서 우리는 포기하고 이 뜨거움을 즐기려한다.
아무도 불평을 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다, 이날 알마티의 기온은 55도 이상으로 카작의 이상 기온이었고 , 카라간다는 48도 이었단다.
인도 여행으로 뜨거운더위와 푹푹 찌는 열차를 경험 해본 나는 이제 그냥 입을 다물뿐이다.
그래도 인도 기차는 선풍기라도 여기저기서 돌아가고 있었는데, 여기는 더 열악한 환경 이다.
정말, 이보다 더 열악 할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한곳에 아홉명,열명씩 모여 앉아 재미있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있다.
시간의 흐름에 둔감해 지고,열기를 즐기고 있을때에 차장이 와서 문을 닫는다
에어컨이 나오니 문을 닫아야 시원해서 좋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 나오는 냉기에 감사하며 우리방은 항시 아홉명 이상이 함께 했다.
그나마 다른 칸은 안 나오니 이것도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후에는 또 꺼지고 반복하기를 수도 없이 하니, 이제는 거의 포기하고 나와도 그만 안나와도 그만이 되었다.
기차가 이름모를 역에 잠시 정차 할때 우리는 한번 내려보았다.
그 열기는 땅과 세상의 모든것이 달구어져있어, 땅을 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길고 긴 낮시간의 해와, 거기에 백야로 길어진 해를 어떻게 끌어내릴까?
컵라면 한개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내일의 사역을 위하여 잠을 청한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더위와 잠금장치가 부실한문 때문에 잠을 설치면서 17시간의 긴기차여행을 끝내고, 새벽에 카라간다역에 내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열악한상황 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시여 저희로 감당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역을 빠져나왔다.
대기하고 있는 빨간 버스를 타고 우리는 석탄의 도시 카라간다에 첫발을 딛는다.
카라간다는 석탄매장량이 512억톤으로 카자흐스탄의 주요도시중의 한곳이며,
알마티에서 1,000km이상 떨어진곳이며, 한때 러시아의 주요 석탄공급원이였기도 하다.
카라간다의 라드니교회의 양병순 선교사님이 마중나오셔서 , 우리는 라드니교회로 향한다.
한재성선교사님이 작년까지 사역하시던곳이며, 부인을 잃은 곳이다.
그일 이후에 한국의 선교단들이 이곳에 오지 않는단다.
우리가 처음 선교단이란다.
한재성선교사님은 착찹한 얼글로 계신다 많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가득한 얼글로, 차마 얼굴을 쳐다 볼수가없어 우리는 애써 얼굴을 외면 하고 있다.
교회에 도착하자 부인의 사진에 입맞추고 부인이 즐겨앉던 자리에 앉아 오열하는 선교사님,
하나님 저분의 슬픔을 거두어주십시요.
하나님 이 슬픔을 털고 빨리 일어설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도착예배를 드리며 함께 울었다.
우리의 눈물이 저분의 눈물을 대신하기를 기도하며 ...
이곳은 영적전쟁이 심한곳이라는 선교사님 말씀에 우리는 바짝 긴장하고, 이땅위에서 우리가 하나님앞에 민감할수 있기를 원하며 회개하는 심령으로 기도하며 나간다.
교회 이층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방 배정을 받고,
계수진선교사님과 함께 카라간다의 땅밟기를 시작했다.
러시아 정교회와 모스크, 또 이곳에서 제일 크다는 은혜교회 까지, 그리고 레닌의 동상앞 까지,
우리가 밟는 이 모든곳이 하나님께 열납 되기를 기도하며 우리는 땅밟기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
추모예배 에서 우리는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와 흐발라를 특송순서로 맡았다,
나는 너무 울어서 찬양을 할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이번 선교여행에 어찌 이리 나를 울리시는지?
정말 한번 눈물이 나면 손수건 한장 만큼은 눈물을 흘리게 하신다.
그렇게 매일 매일 나의 손수건은 마를날이 없었다.
이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시는 선교사님들과 그동역자들 을 보며 그들의 귀한 사역에 눈물을 흘리고....
함께하는 이방의 지체들을 보며 가슴 벅참에... 아름다운 그들의 영혼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 한영혼 영혼이 너무 귀해서 나는 할말을 잊고 그저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뿐이다.
정말 이들을 무어라 표현할 적당한 말을 �지 못하여 이들을 하나님의 보물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하나님의 보물인것이다. 나는 이 카작땅에서 하나님의 보물들을 보고 간다.
메마른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생기를 불어넣어주어 하나님의 백성되게 하여주는 그 귀한사역앞에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다.
그곳의 이방 지체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양병선 선교사님도 얼굴이 빨갛게 될정도로 눈물을 흘리신다.
하나님 이들의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기쁨의 눈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그섬김이, 그겸손이, 그믿음이, 그충성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순종이, 그사랑이, 그찬송이, 그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흡모하는 아름다운 그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우리는 주일을 준비하며 다시 점검의 시간을 갖는다.
각자의 감사의 조건을 찾아 발표하고 함께 감사하며 선교사님의 기도 제목들을 받는다.
또 하루를 감사하며 마감하고 오랫만에 쉼의 시간이 주어졌다.
주일 예배 준비로 모두 분주하고 어린이 예배부터 시작하여 풍선과 포라로이드 사진 등의 사역과
청년들과의비즈공예로 교제의 시간을 갖는다.
예배의 설교와 워쉽등으로 어제와 다른 분위기의 예배를 드렸다.
예배전에 모두서서 두팔을 들고 또는 손벽치며 준비 찬양하는 모습이 너무 은혜스럽다.
우린 은혜를 끼치러 온것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를 받고있는 모습인것 같아서 부끄럽기도하다.
우리는 김진희 선교사의 순교 현장으로 가보았다.
벽에 튀어있는 핏자욱과 모든 살림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모두 할말을 잊었다.
오랜침묵을 깨고 한재성 선교사님의 피맺힌 절규가 터져나왔다.
우리는 선교사님 혼자 계시도록 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선교사님은 부인의 체취가 베어있는 옷한벌을 들고 나오셨다.
누가 이들의 사랑을 막으리오. 우리에게는 그런힘이 없음을 알고있다.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우린 침묵 할 뿐입니다. 주여.....
우린 다시 알마티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밤새워 알마티를 향하여 달린단다.
우리를 보내는 카라간다 지체들의 눈물의 환송을 받으며 길을 떠난다.
우린 최대한으로 편한자세로 눕기도 하고 모여서 떠들며 밤여행을 한다.
하늘 의 수많은 별들 과, 때로는 우리의 화장실이 되어주었던 광활한 벌판들이 우리 일행을 자연인으로 돌아간듯한 기분이들게도 했다,
그후 큰 교통사고가 날뻔 하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셔서 우리는 무사히 알마티로 돌아왔다.
알마티는 역시 뜨겁다. 하지만 약간의 비구름인듯한 구름이 덮여 있다.
우린 작은 버스를 타고 천산의 침블락을 오른다.
해발 2,500m로 만년설이 덮여있으며, 알마타 어디에서도 볼수있단다
메데우라는 스케이트 경기장이 있고 이곳에서 우리 배기태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곳이다.
이 스케이트 경기장을 지나면 길 양편으로 아름다운 팬션들이 들어서있다.
리프트를 타고 3단게까지 오르니 산 정상에는 아직도 눈이 덮여 있고 깊은 골짜기마다 그 깊이와 신비함을 자랑하며 펼쳐져 있으며.
약간의 쌀랑함 마저 느끼며 약간의 고산증세를 느끼게한다.
7월인데 이곳엔 봄꽃으로 한창이다. 푸른 초원위에 노오란 앙증맞은 꽃, 보라색 들풀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야생파꽃이 짙은 바이올렛색 으로 피어 있다.
스키철에는 유럽사람들이 스키를 즐기러오는 곳으로 우리는 약간생소하지만 유럽사람들 에게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서둘러 내려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대자연과 더불어 양고기 샤슬릭과 돼지고기 샤슬릭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알마타 시내로 내려왔다,
시내에는 삼성과 엘지의 광고판이 즐비하게 있고, 롱다리의 제부시카(아가씨) 들이 활보하고 있다.
잠시 백화점에 들어갔다 나오니 비가 촉촉히 와있었다.
함께간 김병렬선교사님 사모님과 통역 집사님은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을 두팔을 벌려서 온 몸으로 맞으며 기뻐한다.
이모습 또한 우리에겐 생소한 모습이다.
우리는 오랫만에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먹었다.
또 이곳 대학에 계신 한ㅇㅇ박사님 내외분도 함께하셨다.
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중 한 카작할머니를 만나서 버스안에서 한재성선교사님과 두나미스교회의 자매가 함께 전도를 하는 모습과 수요집회에 청하며 약도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카작할머니는 집회에 꼭 참석 하겠노라 약속 하였단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오늘은 딸띄꼬르간으로 가는 날.
또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실크로드를 따라서 딸띄꼬르간으로 간다.
이곳은 한재성 선교사님이 사역중에 추방당한곳이며. 영적전쟁이 심하고 감시가 심한곳이란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보다 앞서가서 우리길을 평탄케 하기를 기도하며 길을 떠난다.
이곳은 고려인3세들이 많은곳으로 한국말을 잘하는 고려인들이 많다.
캄차카이 호수를지나고,징기스칸이 유숙하였다는 곳을 지나치고, 끝없이 뻗어있는 이 실크로드는 러시아로 또 중국의 돈황과 우루무치를 갈수있는 길이다.
딸띄꼬르간은 다른 곳에 비해 비옥한 곳이다. 푸른 밭이 많이 눈에 띈다.
이곳 교회는 어떻게 생겼을까? 지체들은 또 어떨까?
우리는 교회앞에 내려졌다.
도착 예배를 드리고, 이곳지체들이 정성껏 준비한 국시를 맛있게 먹았다. 원래는 모든 음식에 향차이란 것이 들어가는데 , 우리 들이 못먹어서 다 빼고 요리를 하였단다, 이렇게 큰 배려를 해주다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
잠시후 우슈또베에서 쿠르드족이 버스로 이동하여 도착 하였다,
원래 그곳에서 집회 하기로 하였는데 집회 허가가 안나서 이곳으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그들과 예배 드리고 여러가지 준비한 사역을 하였다.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그아이들을 즉석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문구의 스티커를 붙여서 나누어주었다.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전도 방법인데 이곳 카작에서 적용 해본다.
모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며 자꾸 찍어달란다
엄마들도 너무 좋아하며 고맙다고 한다.나중에는 가족을 모두데리고 와서 찍어달란다.
명희 자매의 수고가 많았다. 너무 즐겁게 사역하는 모습이 예쁘다.
쿠르드족의 예배모습도 우리가 함께 할수있어서 얼마나 귀한지,
아직 정해진 교회 처소가 없어서 한 쿠르드족 아줌마의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니 그 또한 얼마나 귀한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절로 감사가 나온다.
우리눈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이방지체들인데...하나님보시기에 어떨까?
저녁늦게 가제 잡으러 가자며 김명관 목사님이 오셨다.
80고령의 노모와 함께 온 가족이 선교사역을 하러 오신분이다,
30년정도된 버스를 가져 오셨다.그버스는 마치 영화 세트장에 있어서 호러 영화에나 나올법한 그런 버스다.
의자 시트는 다 헤어져서 거의다 벗겨져 있고, 조금만 굴러가면 저절로 해체가 될것 같은 그런 러시아제 버스인데 웬걸 너무 잘 굴러간다, 아직도 이곳에는 이런 버스가 시내버스의 역활을 잘 감당하고 있을 정도로 튼튼하단다.
우린 한시간정도 달려서 강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이고 우리는 모여서 기도하고 서로 감사의 조건을 나누었다,
물론 가제는 잡지 못했지만 우린 모두 은혜의 시간을 갖게되었다.
이때 한재성선교사님은 별똥별을 보았답니다.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기도의 응답을 받을까요?
딸띄꼬르간의 루바 전도사도 잊을수 없을것 같다.
그도 고려인 3세로서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 이란다. 큰키에 우람한 체격의 여성인 루바 전도사가 큰 목소리로 찬양인도와 여호와를 찬양 할때는 뭔지 모를 위압감 마저 느끼게 한다,
우리는 하루를 루바 전도사님 집에서 묵고 우슈또베로 향한다.
수많은 고려인들이 스탈린 강제 이주정책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이곳 우슈또베에 강제 이주되어 이곳에서 많은수는 죽고 남겨진자들이 땅을 파서 움집을만들어 생활하면서 이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5km의 물길을 만들어 소금기 많은 이땅을 지금의 곡창지대를 만들어 놓은 고려인들의 슬픔이 서려있는 기적의 땅이다.
아직도 그 물길은 힘차게 흐르고 있는데, 이 기적을 이루어놓은 그분들은 이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없으며, 이곳의 드넓은 대평원과, 우리 고려인들의 오래된 무덤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의 국력을 키워야됨과 우리가 꼭 잘살아야되는 이유를 애써 강조하는 김명관 목사님의 설명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우슈또베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동산에 올라 이 산지가 하나님에게 열납되기를 기도하며
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의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고려인들이 묻혀있는 묘지를 돌아보며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우리모두가 이들에게 빚진자요 죄인인듯하다.
알마티 두나미스교회 통역을 하시는 한집사는 이곳이 고향이란다, 그래서 고려인 무덤에서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감회에 젖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의 한 단면의 현장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알마티를 향한다.
알마티 두나미스교회에서의 수요집회는 엄청난 힘을 갖고있다.
교회이름 그대로이다.
금방이라도 폭발할것같은 그런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 있는것 같다.
전도사님의 찬양인도는 가희 살았고 운동력있다고 표현해도 손색없을듯하다.
장애인들이 주로 많았는데. 농아들을 수화로 찬양을 인도하는 유라청년은 천사 그자체이다.
우리는 왜 우리들의 얼굴에 그천사의 얼굴이 없는걸까?
눈이 안보이는 지체들의 오중주는 우리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이끄는 모습들이 진정한 섬김의 모습이었다.
선물을 나눠줄때도 혼란 스런 모습은 볼수 없었다.
대국의 프라이드가 이들에게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예배후에 이 교회 집사님이신 한ㅇㅇ박사님댁으로 초대되어 갔다,
빌리지 형식의 주택으로 우린 정원에서 삼겹살을 대접받았다. 한국에서 먹는 삼겹살보다 더맛이 있게 먹었다.
알마티의 마지막 밤이다.
웬지 카작이 정들어가고 있다. 카작이 푸근함으로 나를 감싸안는것 같다.
처음의 알마티의 두려움이 이제는 사랑 으로 남는다.
선교사님들이 이런 마음으로 이곳에 남아서 사역하시는 걸까?
선교사님들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귀한 보물이며 보석들임을 나는 보았다.
주의일에 귀하고 천한것이 어디있겠냐마는
그들의 사역은 정말 귀하고 귀하다.
그들은 주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이 사용되기를 원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주를 찬양하는 기쁨의 재물로 하나님께 드린사람들이다.
나는 마치 하나님의 귀중한 보물상자중 한곳을 열어보고 온것같습니다
하나남의 보물상자를 열어볼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림니다
나는 두다리와 두발이 퉁퉁 부어서 걷기가 불편하다.
밤새 쉼에도 좀처럼 부기가 내리지 않는다.
아침에 주먹밥을 만들어서 알마티 공항으로 향한다.
우즈벡키스탄 의 타쉬켄트공항에서 의 10시간의 긴 기다림과,
카자흐스탄사역의 총결산의 시간을 갖었다
한제성선교사님이 우리 평화팀이 자신의 사역중에 첫손님이라는 말이 마음에 부담으로 남는다.
함께한 모든지체들과 최기수목사님과 박영규장로님과 한재성선교사님 모두 감사해요.
다음 선교사역에서 다시 함께하기를 기도하며 ...........우리모두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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