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술의 지적 배경
(1) 아리스토텔레스 + 스토아학파
서구인들은 옛날부터 ‘변성’이 생명의 실체라고 생각해왔다. 모충은 나비로, 얼음은 물로, 젊은이는 늙은이로, 도토리는 떡갈나무로 변화한다. 그런데 ‘왜’ 이러한 변성이 일어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원소론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뜨거움, 차가움, 축축함, 건조함이라는 성질이 최초의 네 물질 흙, 공기, 불, 물에 낙인찍혀 있다. 그리하여 이 네 원소가 다양한 비율로 결합함으로써 삼라만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금술사들은 이 네 성분의 비율을 바꿈으로써 한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변성은 자연상태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인데, 연금술사는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자연의 변성을 모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금술은 하나의 물질에서 그 속에 내재한 특정 형상을 제거하여 원래의 물질을 파괴한 후에 다른 특정한 형상을 만드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연금술사들은 한 물질의 창조를 위해서는 다른 물질의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신비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디오니소스나, 오시리스, 페르세포네와 같은 신들, 혹은 한 인간이나 동물의 희생이 다음해의 풍년을 기약해주는 고대의 풍년의식에서도 이러한 신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연금술사들은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완전함(전체성)’을 갈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일곱가지 금속 중 금이 가장 완벽한 것이므로, 다른 여섯개의 기저금속은 그 완벽함에 도달하고자 애쓴다. 땅에 묻혀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태아가 자궁에서 충분히 자라고 태어나듯) 기저금속은 금으로 탈바꿈하는데, 연금술사는 특별한 지식과 기술로 자연의 이러한 변화를 다소 앞당기는 것이다.( 연금술의 정신적 기원에 대하여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를 읽어볼 것) 금은 가장 안정되어 있으므로 가장 완벽하다. 즉 사원소를 분리할 수 없을만큼 거의 완벽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금속과 광물이 근본적으로 사원소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두 개의 증기, 즉 흙의 증기와 수증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연금술사들은 이 이론을 확대해석하여 두 증기는 유황과 수은이며 이 둘이 각기 다른 비율과 순도로 섞여서 개개의 금속과 광물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모든 금속이 녹았을 때 액체상태의 금속, 즉 수은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이론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한 유황이나 수은은 결합하여 황화수은이 될뿐 금속의 성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연금술사들은 곧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유황과 수은이란 보통의 그것이 아닌 ‘철학적’이고 ‘이상적’이며 ‘세속적이지 않은’ 유황과 수은이라고 하였다. 이어 16세기의 괴짜과학자 파라켈수스에 의하여 여기에 소금이라는 물질이 하나 더 첨가된다. 즉 유황, 수은, 소금이 광물의 주요한 요소인 것이다. 사원소, 두 개의 증기, 세 요소와 같은 이론들이 우리에게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지만, 연금술사들에게는 그러한 혼란이 없었다. 데카르트 철학이라는 감옥에 갇힌 현대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모든 것들을 다양한 차원으로 해석하는 데에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역설적 언술이 가능해진다. “하나, 이것은 둘이다. 둘, 이것은 셋이다. 셋, 이것은 넷이다. 넷, 이것은 셋이다. 셋, 이것은 둘이다. 둘, 이것은 하나다.” (그리하여 스핑크스가 냈던 ‘아침에는 발이 네 개고…’로 시작하는 유명한 수수께끼는 연금술에 대한 수수께끼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살펴보자)
수은 |
유황 |
소금 |
금속성, 가용성, 휘발성 |
가연성 |
불가연성, 정착성 |
휘발성, 불에서의 불변성 |
휘발성, 불에서의 불변성 |
재로 발견됨 |
정신 |
영혼 |
육체 |
물 |
공기 |
흙 |
한편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바탕한 이론에, 스토아학파의 영pneuma에 대한 개념 역시 연금술에 가미되었다. 모든 물질은 자신의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광물은 ‘살아있다’. 금속이 근본원소, 혹은 씨앗에서 자라난다는 생각이 연금술의 중심테마가 되었고, 수많은 그림과 상징에서 연금술사가 농사짓거나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그노시즘과 기독교
(그노시즘에 대해서는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을 참조할 것) 그노시즘은 기독교탄생 이전에 생겨나 기독교 부흥 증에도 줄곧 번성하였다. 그노시즘에는 많은 종파가 있는데 그 중 마니교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향을 미쳐 그를 통해 기독교신학에 그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노시즘에서는 두 개의 동일한 힘, 즉 '선한 신'과 '악한 조물주'가 서로 겨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인간은 천상에 있었으나 사악한 조물주의 간계에 의하여 무시무시한 지옥으로 떨어졌다. 즉, 아무 잘못 없이 지옥인 '이 세상'에 살게되어 버린 것. 따라서 인간은 다시 속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천상으로 날아올라야 하는데, 알지 못하는 자들이 ‘살아있다’고 여기는 죽음(삶 속에 깃든 죽음)에 압도되어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잊고 말았다. 그러나 그노시스(gnosis. 그리스어로 지식을 뜻함)를 통해 인간은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는 자’, ‘깨우친 자’만이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 서양연금술의 비밀스럽고 영적인 측면은 대부분 그노시즘의 영향이다. 그리하여 화학작용이 그노시즘의 용어로 표현되고, 그노시즘의 교리가 화학의 옷을 입는다. 한편 그노시즘의 구세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투스(세번 위대한 헤르메스)는 서양연금술의 전설적 창시자였다. 그는 3만 6천권의 원전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에메랄드 평판’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설 ‘퇴마록’을 읽어볼 것) 이 평판은 활자로 된 페이지가 거의 없으며 36장의 편지와 수수께끼 같은 표상으로 가득차 있다. 출처에 대한 전설은 매우 다양하다. 알렉산더대왕이 에메랄드평판 하나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페니키아어로 헤르메스의 무덤이라 새겨져 있었다고도 하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한 동굴에서 우연히 걸려넘어진인 것이 평판이었는데 그것을 파내니 헤르메스의 손가락이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헤르메스가 아담의 아들이었다고도 한다. 이 평판이 최고最古의 연금술 문헌인가 하는 점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나, 여하튼 이 평판은 연금술사들에게 일종의 사도신경이 되었다. 그노시즘의 신비주의와 실험화학의 결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에메랄드평판에 새겨진 헤르메스의 표상들
나는 너희들에게 진실로 참인 한 가지를 전한다. 단일한 작업의 기적을 완수하기 위해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으며,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의 작업을 통한 ‘하나’에서 오는 것과 같이 모든 것들이 이 단일한 하나에 순응함으로써 탄생한다. 태양이 그의 아버지시며 달이 그의 어머니시다. 바람이 그를 배고, 대지가 그를 젖먹여 길렀다. 그것은 모든 세상에서 완성의 근원이다. 그것이 흙으로 변했을 때 그 힘은 무한하다. 땅에서 하늘로 오르고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내려오고,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의 힘을 하나로 모으라. 이렇게 하면 너는 모든 세상 안에서 영광을 획득할 것이며, 네 안에서 온갖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너는 부드럽게 최고의 기술로, 불과 땅을, 압축된 것과 희박한 것을 분리하리라. 그것은 다른 어떤 힘보다 강하다. 날카로운 것들을 모두 초월하며, 강한 것들을 모두 꿰뚫을 수 있기에. 이렇게 세상은 창조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완성된 작업들은 실로 경이롭다. 그러므로 나는 전세계 철학을 이루는 세 부분을 갖고 있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투스라 불린다. 그리고 내가 태양의 활동에 대하여 말해야만 하는 것은 이로써 완전하다. |
한편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그노시즘과 기독교사상의 공통점으로 인해 그노시즘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둘 다 구원과 관련되었으며, 죽음과 재생이라는 용어로 재탄생의 경험을 묘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둘 간에는 근본적 상반성이 있다. 교회에서는 인간이 원죄로 인하여 원래 타락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노시즘에서 인간은 신성한 존재이며, 일시적으로 추방된 신과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근본적 차이로 인하여 때로 연금술은 교회의 박해를 받기도 한다.
(3) 아랍의 영향
연금술을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은 6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중세유럽에서 실상 잊혀져있었다. 그러나 그 전통은 그동안 아랍인들에 의하여 생생하게 보존되었다가, 르네상스시기에 다시 유럽으로 들어오게 된다. (역사적 서술은 생략한다) 연금술에 관련된 많은 영어식 용어가 아랍어에서 기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스토아학파가 가미되고, 후에 그노시즘의 신비주의가 섞이고 다시 아랍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걸러진 이론이 서구 연금술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2.현자의 돌 만들기
(1) 불의 온도
불은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 마지막 순간에 최고도에 달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정설이었다. 그러나 쓸만한 온도계가 18세기 초에나 고안된 것을 감안한다면, 연금술사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각 온도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정의가 속출하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물에 푹 젖은 수건을 말릴 정도의 열기’, ‘요리사들이 큰 쇠고기덩이를 구울 때 지피는 불의 열기’ 등이 있다.
(2) 원물질
만화를 보면 마녀가 뭔가 마법의 약을 만들기 위해 온갖 이상한 것들을 큰 항아리에 던져넣고 부글부글 끓인다. 연금술사들도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온갖 것들을 다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성공한 연금술사들은 그 물질이 곳곳에 널려있으나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3) 색깔변화
변성과정에 있어 그 물질의 색깔변화가 매우 중요하였다. 정통적 견해에 따르면 작업과정의 진행에 따라 검은 색에서 시작하여 흰 색을 거쳐 붉은 색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에는 자주색 염색이 아주 귀하고 비싼 것이었기 때문에 황제나 원로원의 제복색으로 아껴서 사용하곤 했다. 그리하여 붉은 색이나 자주색이 ‘젊은 왕’ , 현자의 돌의 탄생을 알리는 상징으로 쓰이게 되었다.
(4) 처리과정
처리과정의 각 단계에 대해서는 연금술사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18세기 프랑스 연금술사 동 페르네티Dom Pernety가 처리과정을 점성술의 12궁과 연관하여 서술한 것을 중심으로 살핀다.
1> 하소calcination (양자리) 재료를 밀폐되거나 뚜껑없는 용기에 넣고 가열하는 과정. 결과적으로는 산화처리에 해당한다. 이는 죽음, 부패 등으로 묘사되었고 용기는 무덤, 관, 지옥, 그리스신화의 지하세계 등으로 불렸다. 연금술 상징화에서 하소는 까마귀, 갈가마귀, 두개골, 관 혹은 섬뜩하고 난폭한 죽음의 장면으로 상징된다. 일명 ‘검은단계’.
2> 응결congelation (황소자리) / 3> 응고fixation (쌍둥이자리) 응결과 응고는 물질을 고체, 즉 단단하게 휘발되지 않게 만드는 과정. 다시 말하면 수은의 휘발성을 고정시켜야만 한다. 손과 날개달린 발이 잘려나간 헤르메스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상징되는 단계.
4> 용해dissolution (게자리) / 5> 소화digestion (사자자리) 흰색 단계. 증류기 속의 물질이 하얗게 순화된다. 연못에서 수영을 하거나 욕조에 앉아있는 요정과 자웅동체, 왕과 여왕 등으로 상징된다. 이렇게 물에 빠지면 사람의 어두운 면이 드런나지만, 나중에는 이 용액에서 떠올라 살아나며 전보다 더 좋은 상태가 된다.
6> 증류 distillation (처녀자리) / 7> 승화 sublimation (천칭자리) 증기가 용기 속에서 피어올라 농축되었다가 증발하는 과정을 보고 연금술사들은 영적인 물질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가 한층 정화된 순수한 상태에서 육체와 결합하는 기적과 같은 변성이라고 여겼다. 이 과정은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ouroboros 뱀으로 상징되며(이 뱀은 연금술 자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새들의 날아오름,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림으로 표현된다.
8> 석출 separation (전갈자리) 잔류물에서 액체를 증발시키는 것을 포함하는 여러 과정.
9> 밀랍 ceration (사수자리) 물질재료를 부드럽고 유동적인 밀초처럼 만드는 것.
10> 발효 fermentation (염소자리) 발효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기저금속이 금으로 변성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 돌을 ‘촉매제’라 칭한다. 두번째로 현자의 돌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돌에게 어떤 무엇인가를 주는 과정이다.
11> 증식 multiplication (물병자리) 자기 무게의 몇천배나 되는 기저금속들을 변화시키면서도 힘에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도록 돌의 힘을 증대시키는 과정. 밀리우스의 ‘개정된 철학Philosophia Reformata’(1622)에서 증식을 나타내는 삽화를 보면 (죄송합니다. 올릴만한 퀄리티의 그림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사자는 현자의 돌을 나타내고 발에 매달린 새끼들은 현자의 돌이 자신의 힘을 잃지 않고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여왕이 들고 있는 메달에는 펠리컨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메달은 연금술 실험용기 아타노르athanor를 상징한다. 이 용기에서 현자의 돌이 만들어지며, 현자의 돌을 상징하는 것이 펠리컨이다. 옛날 사람들은 펠리컨이 자신의 피로 새끼를 먹여살린다고 오해해왔다. 펠리컨이 모이주머니에서 모이를 게워낼 때의 모습이 마치 자기 가슴을 부리로 쪼고 있는 것같기 때문이다. (펠리컨은 또한 그리스도의 상징이었다)
12> 사영 projection (물고기자리) 돌은 가루가 되어 종이나 밀랍에 싸여 변성시킬 물질에 던져넣어진다.
(5) 점성술의 영향
현자의 돌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천상계의 움직임에 의존한다. 위에서 보았듯 페르네티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작업이 태양이 양자리에 들 때 시작하여 물고기자리에 위치할 때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 일반적 견해였다. 양자리의 때가 3월로, 태양의 힘이 커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금속을 나타내는 연금술 기호가, 금속이 상응하는 행성의 기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납 |
|
토성 |
철 |
|
화성 |
구리 |
|
금성 |
수은 |
|
수성 |
주석 |
|
목성 |
은 |
|
달 |
금 |
|
태양 |
3. 수수께끼의 연금술
은유, 수수께끼, 역설, 우화, 암호문자, 상징그림, 이상한 동의어 등,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신비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 교회나 국가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수 세기에 걸쳐 연금술 용어들의 뜻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 속에서 몇 번의 번역을 거치다 보니 의미가 모호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셋째, 사이비 연금술사들이 연금술용어의 모호함을 이용하여 사기를 칠 목적으로 일부러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