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이 태어난 날,
엄마는 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딸이 삶을 시작한 그 날, 죽음과 마주하게 된 엄마.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첫 딸 소윤이.
첫 출산을 하자마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33살의 젊은 안소봉(33).
30살 애기아빠인 남편 김재문(30). 그리고 이제 백일을 넘긴 딸 소윤이.
세상살이가 간단치 않다지만 이들 세 식구의 사연만큼 기막힌 게 있을까?
지난 2006년 9월 21일. 이들 부부가 간절히 기다리던 첫 딸 소윤이가 태어났다. 딸과
만나는 순간 임신 중 겪었던 통증의 고통은 끝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삶을 시작한 딸. 소윤이가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 검붉은 피를 토
해냈다. 그것은 이 가족이 헤쳐 나가야 할 고통의 시작이었다.
엄마 안소봉씨의 몸에서 10개월 동안 암세포와 딸 소윤이가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
이다. 엄마의 위를 시커멓게 만든 암세포는 이미 간까지 전이되어 있는 상태.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고 빌어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우는 어
린 딸을 보며 안소봉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젖 한 번 물려보지도 못한
내 딸 소윤이를 두고 죽을 수는 없다.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한 내 딸을 위해서 나는
살겠다. 그렇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기나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 암까지 사랑한 엄마
엄마의 꿈은 소윤이가 태어나면 모유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출산 다음날, 암
으로 인한 통증 조절을 위해 투여하는(마약성 진통제)까지 거부한 독한 엄마다. 10개
월 동안 암을 생으로 견뎌냈으니 얼마나 강한 엄마인가. 초보 엄마 안소봉씨는 세상
의 모든 산모가 다 자기처럼 견디기 힘든 고통을 참는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을 견디면서 엄마가 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딸이 태어나면 고통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를 기다
린 것은 이제야 만난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6개월일 거라는 통보였다.
아무리 믿을 수 없다고 외쳐 봐도 눈을 뜨면 또다시 통증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암세
포는 끊임없이 커지고 있는 절망 속 현실이었다.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몸부림 칠 때 소윤이가 밉기도 했다는 엄마. 너만 아니면, 임
신 중 검사만 빨리 받았었더라면, 내가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어린 딸 소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 순간 그녀는 아직 엄마가 아니었다. 단지 살고 싶은 한 인간이
었다. 그러나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 그것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듯이 안소봉씨의 마음이기도 했다.
엄마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짧은 삶에 욕심을 냈다. 그렇게 소윤의 생명과 바꾼,
자기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암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암세포 때문에 새까맣게 변한
위를 보며 ‘이 놈들이 결국 날 굶어죽일 생각이군. 나쁜 놈들...’이라며 농담도 한다.
임신 중, 암이란 걸 알았다면 소윤이를 포기해야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겠지
만. 지금은 이렇게 엄마가 되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안소봉씨는 남편과
딸을 생각하며 암세포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았다.
그렇게 우는 딸을 품에 안고 그녀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 소윤이의 백일
소윤이가 태어난 지 벌써 백일이 됐다.
어린 딸이 태어날 때, 배속에서 삼킨 엄마의 검붉은 피를 토하고, 염증수치가 높아
백일까지 살 수 있을까. 건강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다.
그리고 엄마의 건강도 딸의 백일잔치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했다.
하지만 모녀는 강했다. 보란 듯이 백일을 견뎌줬다.
그러나 결국 투병 중인 엄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축하받아야할 딸의 백일잔치
는 취소됐다. 미안해할 아빠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소윤이 병원을 찾았다. 이미 종
양으로 인해 위와 십이지장이 연결되는 통로가 막혀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못한
지 보름째. 몸을 가눌 힘도 없는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딸을 조심스레 품에 안
는다. 딸 소윤이의 백일을 축하하고자, 직접 쓴 편지를 소윤이에게 읽어주는 부부.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딸에게 부부의 마음을 전한다.
내 딸 소윤이를 사랑한다고...네가 태어나서 고맙다고...
■ 엄마의 새로운 약속
7개월 째 암과 힘겨운 싸움 중인 엄마.
항암치료를 앞둔 하루 전 날, 뒤늦게 소윤이의 백일 기념사진촬영을 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첫 가족사진. 엄마는 어린 딸에게 약속한다.
사랑하는 내 딸 소윤아 돌잔치는 꼭 해줄게!!
그러려면 반드시 일 년은 더 살아야 한다. 엄마는 소망한다.
소윤의 엄마로, 소윤은 자신의 딸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윤이가 ‘엄마’라고
또렷이 부르는 그날까지 만이라도 짧은 삶을 허락해 달라고.
2007년 봄. 앞으로 남은 시간은 최소 일 년. 딸을 향한 엄마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
까?
■ 내 남편 재문
아내보다 세 살 어린 남편 김재문씨. 첫 딸의 탄생을 축하받을 틈도 없이 아내의 시
한부 6개월 판정을 선고받은 남편이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되돌아 올 거
라고 생각했다. 이 악몽에서 깨기 위해 잠들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죽음이라는 절망이 아내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아픈 딸을 떼어놓고 무작정 서울로 향한 어린 남편.
아내 간병하랴, 딸 키우랴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그는 얘기한다. 두 여자가 살아만
준다면 평생 아내와 딸의 든든한 머슴이 되겠다고. 그때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릴
거라고. 꼭 그렇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