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되는♡길

어른 노릇 하는 법

탤런트 2007. 2. 2. 17:13
어른 노릇 하는 법
 

* 부자의 법칙 : 들어오는 돈주머니의 입을 넓게, 나가는 입은 좁게 하라.

 

충청도 청주 땅에서의 일이다.

삼대가 한 집안에 사는데 자작(自作)도 있고, 남의 논도 부치고 지내건만 언제나 살림이 옹색해서 어른들 이마에 내 천(川)자가 가실 날이 없었다.

 

어느 날 밤 역시 살림 어려운 걱정을 하고 있으려니까, 열 살 남짓한 아들놈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엔 어른이 없어서 늘 이 모양이여!"

 

"네 이놈, 할아버지가 계신데 그 따위 소릴 함부로 지껄이느냐."

 

"할아버진, 어른 자격 없시유!"

 

"헐, 그래. 이 놈아 아비가 있는데도 그러냐?"

 

"아버지도 자격 없슈!"

 

"이런 놈을 보게, 그럼 누가 어른 자격이 있누?"

 

"나나 할만 할까요, 다른 사람은 못할 거예요."

 

"그럼 네가 어른 노릇하렴."

 

"흥, 그렇게 밥알 물고 병아리 부르듯 해서 어른 노릇이 되나요? 제대로 시켜야지."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시키는 게냐?"

 

"대체 어른이라는 것이 말발이 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온 집안 식구며, 동네가 다 그렇게 알아야 할 거니까 사당에 고유(告由)*를 하고 절차를 밟으세유."

 

그리하여 할아버지가 책력을 펴고 길일을 가리어 사당을 열고 고유를 했다.

"모년 모월 아무날 효현손 아무개는 삼가 사대 영전에 고하나이다."

 

요컨대 가도(家道)를 바로 잡지 못하여 이 형편으론 조상 제사마저 못 지낼 지경이라 이제 별 도리 없이 손자 아무개로 어른을 대행시키게 하였사오니 조상께서는 굽어 살피사 음으로나마  많이 도와주십사 운운하며 재배하고 물러나자 손자가 새 옷을 갈아입고 나와 분양한다.

 

"어린 제가 집안 어른으로서 중책을 맡았사옴은 이 몸의 무능함을 돌보지 않고 오직 이 집안을 중흥시켜 보려고 작은 정성에서 나온 것이니 조상 영령께서는 가운(家運)의 장래를 생각하여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십시오."

 

고유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온 가족 수십 명을 서열에 따라 들어서게 하고, 가훈을 선언하였다.

 

"첫째, 조석은 때에 맞춰 먹는다. 만약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그 끼니는 굶긴다.

둘째, 언제고 밖에 나갔던 사람은 빈손으로 대문 문지방을 넘어서는 안된다.

셋째, 날마다 잘 때는 이 집안 흥륭(興隆)*을 위하여 자신이 얼마나 기여하였나를 스스로 반성하라."

 

이것뿐이니 모두 잘 준수해주기 바란다는 간곡한 부탁으로 식을 마쳤다.

뭐 대단한 거나 있나 했더니 기껏 요것뿐이라 싱거운 것 같았으나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사람의 타성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처음 얼마동안은 식구 가운데 몇몇은 가끔 끼니를 굶었다.
 
그러나 그것도 습관이 되니 여인네들이 식사를 차려놓으면 온 가족이 일시에 달려들어 화다닥 먹어치우고 하여 전 같으면 하루 종일 부엌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여자들이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마을에 갔다 돌아오다가도

"하마트면 잊을 뻔 했구나..."
하고는 그 근처에서 돌멩이든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집어 들고 집에 들어섰다.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들락거리고 드나들며 아이들도 신바람이 나서 아무거나 마구 주워 들였다. 그러는 중에 이왕이면 이렇게 아무거나 집어들일 게 아니라 소용이 될 것을... 하는 식으로 차츰 목적의식이 분명해져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개똥을 주워 들이자 두엄자리에는 거름더미가 쌓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잔돌멩이를 주워다 비에 패인 곳을 메우고, 어른들은 큰 돌덩이를 주워 들여 산더미 같아지니 그해 가을에는 울타리를 뜯고 돌각담을 쌓게 되었다. 이렇게 일이 되자 온 집안에 씩씩하고 청신한 기운이 가득 찼다.

 

약속한 일년이 지났다.
가족들은 그 동안의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 만장일치로 어른의 중임을 요청하였다.
꼬마 어른도 과히 사양치 아니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책은 따로 없었다. 다시 또 한 해가 지나고 보니 이젠 제법 집안 살림의 틀이 잡혔다.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며 하는 말이

 

"할아버진 늙으셨구, 이제 아버지께서 어른 노릇 하슈. 그동안 보아서 많이 배우셨을 테니까."

 

"......"

 

 

* 고유(告由) : 집안 대사를 치르고자 할 때나 치른 뒤에 그 까닭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하는 제사(祭祀)
* 흥륭(興隆) : 매우 융성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