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중에서 가장 큰 창업은 개국(開國)이다. 개국의 원리는 이 시대 기업의 창업 원리와 마찬가지다. 보잘 것 없는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많은 시련과 좌절 위에서 하나의 기업으로 우뚝 자리를 굳혀간 것이다.
일찌기 중국 한나라의 유방도 본디 볏섬이나 수확하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유협의 무리들과 친교를 맺고 창업을 했다.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은 어떠한가. 조부에서 아버지의 대로 이어지는 소작농 집안인 빈농의 아들이었다.
가깝게는 미국의 오랜 부호인 록펠러는 잡화상 종업원에서 시작했으며 데일 카네기는 선원, 신문재벌 허스트도 광부로 시작했다. 창업이 성공했을 때 그는 하늘이 낳은 영걸이라는 그럴듯한 신화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뿌리깊은 재벌들 가운데 정미소나 쌀장사로 출발한 사람들이 여럿 된다. 한국 기업가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창업을 시작한 사람은 평북 철산 출신의 설경동(대한전선 창업자)이다. 9세 때 부친을 잃고 날품팔이로 시작해 미곡상을 시작한 것은 열 다섯. 20대 초반에 사업의 기틀을 다져 수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제 강점기 천하의 박흥식(화신백화점 사주)도 고향인 용강에서18세의 어린 나이로 쌀장사를 시작해 큰 돈을 벌어 20 전의 나이에 거금 5만원을 벌어들인다. 이후 1930년대 4대 부호로 등극한다.
그런데 정미소의 일이란 도정을 해주면 팔두작미(八斗作米)라 해서 벼 한 섬을 찧어 쌀 여덟 말을 받고 두 말을 현물로 방아삯으로 준다. 때문에 일년 내내 땀흘리며 수천평 농사짓는 것보다 수월하다. 그러나 제 땅을 가지고 짓는 농사도 아니기 때문에 곳간에 가득 찬 곡식이라고 해도 헛배 부를 일은 아니다. 말하자면 곳간의 벼는 찧는 즉시 쌀가마로 되실려나가야 하고 방앗간은 다만 그 물량의 일부만을 삯으로 뗀다는 너무나 뻔한 통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을 한철 번 삯곡으로 1년 양도(糧道)를 해야 하고, 이듬해 끝내기로 한 발동기 외상값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성도 있다. 가령 바깥 양반은 겨울 한철 골패에 미쳐 얼마를 까불리고, 아낙은 아낙대로 살림살이가 푼푼하지 않다면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정미소 사업이다.
좀더 살펴보면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이 벌인 첫 사업은 1936년(당시 26세) 마산에서 시작한 정미소였다. 이후 정미소로 출발해 운수 부동산 양조 무역업으로 사업을 넓혀간다.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18세의 가출 청소년 정주영이 막벌이 공사판을 전전하다 정착한 곳도 정미소였으며, 3년 후 서울 신당동에 싸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1937년). 이후 자동차서비스업으로 전업한다.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도 초기에는 목포에서 정미소, 신동아그룹 창업주 최성모는 사리원, 한국유리의 최태섭은 평양에서, 성창기업의 정태성은 영주 등에서 시작했다. 이들과 엇비슷한 시기에 조선흥업이란 무역회사 간판을 걸고 목탄장사를 시작한 구인회(LG그룹 창업주)도 있다. 재벌 1세대라고 불리는 이들 대부분 일본인 회사 밑에서 직공으로 일하거나, 막벌이 노동자로, 식료품상, 양조공장, 유지공장, 양말공장, 포목상 등을 운영하여 현재의 재맥을 이룬 것이다.
이들 모두 보잘 것없는 종자를 싹틔워 규모를 키우고 형세를 넓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연자매에서 발동기로 발동기에서 정미소로 가세(家勢)를 키워 한 지방의 유지가 되고 또 그것을 사업밑천으로 하여 오늘날의 재벌급 기업으로까지 성장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김성수, 박흥식, 박두병, 최창학 등을 제외하곤 감히 서울 바닥엔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던 초짜 지방사업가들이었다.
이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부모 잘 만난 것보다, 조국 잘 만난 것을 고마워하라 어려운 시대에 태어날수록 자기와의 승부, 어떤 강적보다 강한 자기와의 승부에서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
시대와 시대의 어려움을 탓하지 마라 자신이 하는 일[業]에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가 타고난 인생 자체가 시대의 어려움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임을 어쩌랴?
실적을 남겨라. 실적은 위대한 물증(物證)이다 실적만이 일의 결과인 성공을 보장한다. 물증이 당당한 실적은 어떤 해설도 필요없는 과녁을 꿰뚫은 성공의 화살이다.
* 객담 남의 집에서 CEO 노릇(이른바 전문경영인이라고 하나 결국 고용사장) 하는 것도 번듯하게 생계를 꾸려가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고용사장도 실제 두 종류로 나뉜다. 실세가 있는 사장과 실세가 없는 사장. 이 기준은 오너의 직계로서 혈통을 이어받은 경우를 기준으로 나뉜다. 명백한 것은 '오너는 지위와 권한을 누리지만, 고용사장은 책임만 따른다.'는 점이다. 실세도 아니며 게다가 실적마저 따르지 않는 고용사장을 끝까지 뒷배 봐줄 오너는 없다. 대신 돌아올 그 책임만큼은 냉엄하다.
항간에 퍼져있는 부자가 되는 법을 보자. 전문가들이 묘책이라고 내놓은 것을 간추리면 크게 동산(주식, 펀드 등)과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전세금 빼내 몇 번 굴리자 목돈이 되었다는 이야기' 따위가 많다. 물탄 막걸리처럼 싱겁다. 여전히 크게 돈을 벌려면 자신 이름을 걸고 내 가게 내 사업을 하는 '창업'이 으뜸이다. 남의 처마를 빌려 드럼통에 빵을 구워 돈 번 이야기(삼립식품)와 같이 침이 마르고 손에 땀나는 창업 비사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어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 것인가(王侯將相 寧有種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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